채권 (Bonds)
미래의 현금흐름을 약속하는 증서 — 시간을 거래하는 가장 표준화된 도구. 가격과 수익률은 한 사물의 두 표현이다.
1. 채권이란 무엇인가
1.1 미래의 현금흐름을 현재로
채권의 본질은 결국 시간을 거래하는 계약이다. "지금 100을 줘. 1년 뒤에 105를 갚을게"라는 약속이 가장 단순한 형태고, 거기에 만기·이자 지급 주기·발행자의 신용도 같은 변수가 더해진 것이 우리가 시장에서 보는 모든 채권이다.
대출(loan)과 채권(bond)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 — 차주가 빚을 지고 채권자가 청구권을 갖는 — 이지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 구분 | 대출 | 채권 |
|---|---|---|
| 관계 | 차주 ↔ 은행 1:1 양자계약 | 발행자 ↔ 다수의 매수자, 표준화된 증서 |
| 유통성 | 은행 장부에 묶임 (매각엔 별도 절차 필요) | 2차 시장에서 자유롭게 매매 |
| 가격 | 장부가 — 만기까지 변동 안 함 | 매일 시장가격이 변동 |
| 가격 발견 | 없음 (양자 협상) | 실시간 시장 신호 |
같은 빚이지만 채권은 표준화 + 유통가능이라는 두 속성으로 인해 가격이라는 시장 신호를 갖는다. 이것이 채권을 단순한 차용증서가 아니라 통화시스템의 핵심 도구로 만든다.
1.2 한 장의 채권 — 네 가지 요소
모든 채권은 — 미국 30년물이든 한국 회사채든 — 다음 네 가지로 정의된다.
- 액면가: 10,000원
- 표면금리: 3.5% (= 매년 350원 지급)
- 만기: 10년 (반년마다 175원씩 20회 지급)
- 발행자: 대한민국 정부
이 채권을 산 사람은 향후 10년간 매 6개월마다 175원씩 20번 + 10년 뒤 10,000원을 받기로 약속받는다. 시장에서 이 약속이 지금 얼마짜리인지 — 그것이 채권의 시장가격이다.
1.3 예금의 금리 vs 채권의 할인 — 같은 시간 거래의 두 표기법
채권을 처음 접할 때 가장 헷갈리는 지점이 여기다.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금리"는 거의 모두 예금형 표기 — 원금을 맡기면 그 위에 이자가 덧붙어 미래에 더 큰 금액이 된다 — 인데, 채권 시장에서는 할인형 표기 — 미래에 받을 금액을 미리 정해두고 그보다 싸게 지금 사는 것 — 가 자주 등장한다.
할인형(선이자, discount): 1년 뒤 \(F\)를 받기로 정해두고, 지금 \(P = F/(1+y)\) 또는 \(P = F(1-d)\)로 더 싸게 산다. 이자는 매수가에 이미 빠져있다.
같은 거래, 다른 표기
두 표기가 가리키는 경제적 실체는 같다 — "지금의 돈"과 "미래의 돈"을 교환하는 시간 거래. 차이는 무엇을 100으로 두느냐에 있다. 예금은 현재 원금을 100으로 두고 미래를 105로 보고, 할인은 미래 액면을 100으로 두고 현재를 95로 본다.
왜 채권은 할인형을 쓰는가
역사적·실무적 이유가 같이 작동한다.
- 액면가는 표준화의 닻: 채권은 만기가 지나면 모두 액면가 그대로 상환된다. 매수 시점이나 매수가격과 무관하게 10,000원이 그대로 돌아온다. 그래서 액면을 100으로 두면 모든 채권을 같은 자에 올려놓고 비교할 수 있다.
- 중도 매매 가능성: 채권은 만기 전 언제든지 매매된다. "잔존 만기 7년짜리 채권"의 가격은 미래에 받을 액면가에서 거꾸로 할인해서 계산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금처럼 "이만큼 맡기고 이만큼 받는다"는 표현은 중도 매매를 잘 다루지 못한다.
- 이자 지급 방식이 다양: 어떤 채권은 쿠폰이 없고(제로쿠폰) 어떤 채권은 매 분기 쿠폰이 있다. 모두 한 식 \(P = \sum C/(1+y)^t + F/(1+y)^n\)으로 통일하려면 할인 표기가 맞다.
만기 전에 쿠폰을 한 푼도 안 주는 채권. 1년 뒤 10,000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지금 9,709원에 산다 — 그 차액 291원이 이자 전부다. 이자를 따로 지급하지 않고 "할인된 매수가" 자체에 녹여놓은 채권. 단기 국채(T-Bill, 통안증권 일부)가 이 형태다.
은행 예금에 비유하면 — "10,000원을 1년 뒤에 돌려받기로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금 9,709원에 판다"고 표현하는 셈. 같은 거래지만 표기가 다르다.
쿠폰 채권은 두 표기가 섞인다
대부분의 채권은 둘 다 동시에 쓴다. 표면금리(쿠폰)은 예금형 표기로 "액면가 × 표면금리"만큼 매년 이자를 준다고 약속하지만, 시장가격은 할인형 표기로 미래 현금흐름들을 할인한 합으로 결정된다.
| 구분 | 예금형 (Accrual) | 할인형 (Discount) |
|---|---|---|
| 기준점 | 현재 원금 = 100 | 미래 액면 = 100 |
| 예시 거래 | 10,000원 예치 → 1년 뒤 10,300원 | 9,709원 매수 → 1년 뒤 10,000원 |
| 표기되는 수치 | 금리 r — 원금 위에 얹는 비율 | 수익률 y — 현금흐름을 깎는 할인율 |
| 주 사용처 | 예금·적금·CD·일반 대출 | 채권 (특히 제로쿠폰·할인채)·환매조건부 |
| 중도 매매 | 잘 안 됨 (계좌에 묶임) | 매일 시장 가격에 거래 |
| 여러 만기 비교 | 어려움 (만기가 다르면 다른 상품) | 쉬움 (수익률 곡선으로 한 화면에) |
예금형 3%: 10,000원 → 10,300원. 1년간 실제로 얻은 수익은 \(\tfrac{300}{10{,}000} = 3.0\%\).
할인형 3% (discount rate, 미국 T-Bill 표기): 만기 1년 액면 10,000원짜리를 9,700원에 매수. 표면적으로 "할인율 3%" 라고 부르지만, 실제 1년 수익률은 \(\tfrac{300}{9{,}700} \approx 3.09\%\). 즉 같은 "3%"라도 어디를 100으로 두느냐에 따라 약간 다른 값.
그래서 미 재무부 T-Bill 호가는 두 가지 수치를 함께 표시한다 — Discount Rate(할인 표기)와 Investment Yield(예금형으로 환산). 보도에서 "3% T-Bill"이라 말하면 둘 중 어느 쪽인지 따져봐야 한다.
채권에서도 "금리"라는 단어는 등장한다
혼란을 더 가중시키는 것은 — 채권 시장에서도 "금리"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는 점이다. "10년물 국채 금리가 4%로 올랐다"고 할 때 그 "금리"는 사실 만기수익률(YTM)이며 본질은 할인율이다. 그런데 일상 보도는 "금리"라고 표현한다 — 일반인에게 익숙한 표기를 빌린 것.
할인형은 "미래 받을 것"을 기준으로 현재를 본다 → 미래 액면에서 깎아 내려간 매수가가 나온다.
같은 시간 거래의 두 표기법일 뿐이며, §3의 YTM은 이 할인형 표기를 정식 정의한 것이다.
1.4 물리적 비유 — 시간을 거래하는 콘덴서
이 비유는 §4의 듀레이션·컨벡시티에서 더 분명해진다. 만기가 긴 채권은 시상수가 큰 콘덴서 — 외부 자극(금리 변동)에 더 큰 진폭으로 반응한다. 신용등급이 낮은 채권은 누설이 큰 콘덴서 — 약속한 만큼 다 돌려주지 못할 위험이 있다.
2. 발행자별 분류
2.1 채권의 분류 체계
채권은 누가 발행했느냐에 따라 신용도·세제·시장 두께·통화시스템에서의 역할이 모두 다르다. 한국·미국의 분류를 한 화면에 모았다.
2.2 국채와 통안채
국채는 채권 시장에서 벤치마크 역할을 한다 — 다른 모든 채권의 가격은 결국 "국채 + 스프레드"로 표현된다. 위험가중치가 0%(BIS 기준)인 유일한 자산이라 상업은행이 자기자본 부담 없이 대량 보유한다. 한국 시중은행은 자산의 10~15%, 일본은 그 이상.
한국은 통화 조절 도구로 한국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채권이 있다 — 통화안정증권(통안채). 미국 Fed에는 없는 도구다.
- 발행자: 한국은행 (정부가 아님)
- 목적: 시중 유동성 흡수 — 통안채를 발행해 자금을 빨아들임
- 잔액: 약 130조 원 (2024년 기준) — 본원통화 규모와 비슷
- 왜 필요한가: 한국은 경상수지 흑자로 외환이 계속 유입 → 본원통화가 자동으로 늘어남 → 이를 흡수하지 않으면 인플레이션 압력. 통안채가 영구적 흡수 수단
미 Fed는 같은 일을 일시적 RP(레포)나 IORB 금리로 처리한다. 한국이 통안채라는 별도 도구를 두는 이유는 구조적 외환 유입을 영구적으로 흡수해야 하는 한국 특유의 사정 때문이다.
2.3 회사채·금융채
회사채는 일반 기업이, 금융채는 금융기관(은행·카드사·캐피탈)이 발행한다. 한국에서는 금융채가 회사채와 별도로 분류되는데, 금융기관이 발행자라는 점이 신용 분석을 달라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반 기업은 영업이익으로 갚지만, 금융기관은 자산-부채 매칭과 BIS 자본 비율로 갚는 능력이 평가된다.
| 구분 | 회사채 | 금융채 |
|---|---|---|
| 발행자 | 일반 기업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 은행·카드사·캐피탈·할부금융 |
| 신용 평가 기준 | 영업이익·현금흐름·재무비율 | 자기자본·BIS·자산 건전성 |
| 만기 | 3·5·10년 흔함 | 1·2·3년 단기 위주 (사업 사이클이 짧음) |
| 주 매수자 | 보험·연기금·자산운용사 | 다른 금융기관·기관투자자 |
| BIS 위험가중치 | 20~100% (등급별) | 20~50% (상대적으로 낮음) |
주 매수자가 보험·연기금·자산운용사라는 점이 중요하다. 중앙은행 페이지에서 언급한 대로, 회사채 잔액의 90% 이상은 이런 장기 기관투자자가 보유한다. 개인이 직접 회사채를 사는 비중은 작고, 대부분은 펀드·ETF를 통한 간접 보유다.
2.4 MBS·ABS — 구조화 채권
- MBS (Mortgage-Backed Securities): 기초자산이 주택담보대출. 미국에서는 Fannie Mae·Freddie Mac이 발행한 agency MBS가 압도적 비중. 한국은 KHFC(주택금융공사)가 발행한 MBS
- ABS (Asset-Backed Securities): 기초자산이 자동차할부·카드매출·학자금대출 등 다양
- CLO (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s): 기초자산이 기업 대출. 2010년대 이후 빠르게 성장
- 커버드본드: 은행이 발행하지만, 만일을 위해 별도의 자산 풀이 담보로 깔려있는 채권
서브프라임 위기의 핵심은 — "묶으면 안전해진다"는 가정의 붕괴였다. 개별 모기지의 부도 위험이 독립적이라고 가정하면 풀로 묶을수록 분산효과로 안전해진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하락이라는 공통 충격이 오자 모든 대출이 동시에 부실화 — 풀이 통째로 무너졌다.
이후 미국 Fed의 QE는 국채와 함께 agency MBS도 대량 매입해왔다. 모기지 시장의 유동성·금리를 직접 통제하려는 목적.
3. 가격–수익률의 역관계
3.1 만기수익률(YTM)의 정의
채권의 가격이 변하면 보유자가 실제로 얻는 수익률도 변한다. 이 "현재 가격으로 사서 만기까지 들고 있을 때의 연 수익률"이 만기수익률(YTM, Yield to Maturity)이다.
- \(P\) : 채권의 현재 시장가격
- \(C\) : 매 기간 쿠폰 지급액 = 액면가 × 표면금리
- \(F\) : 액면가 (만기에 일시 상환)
- \(n\) : 남은 기간 수 (예: 10년물에 반년 쿠폰이면 \(n=20\))
- \(y\) : 만기수익률 (YTM) — 우리가 구하려는 값
식은 단순해 보이지만 \(y\)에 대해 닫힌 해(closed form)가 없다 — 수치적으로 풀어야 한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호가창에 가격과 YTM이 모두 표시되며, 둘 사이는 한 번의 계산으로 변환된다.
3.2 왜 가격과 수익률은 반대로 움직이는가
채권 보도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표현: "금리가 오르자 채권 가격이 떨어졌다." 이 역관계는 회계적·논리적 필연이다.
식으로 보면 \(P = \sum C/(1+y)^t + F/(1+y)^n\) 에서 \(C\), \(F\), \(n\)이 고정이므로 \(y\)가 오르면 분모가 커져 \(P\)가 작아진다. 이는 단순한 수학적 결과지만, 그 의미는 "신규 발행 환경의 변화가 기존 채권 가치에 곧바로 반영된다"는 것이다.
3.3 숫자 예제 — 10년물의 1%p 변동
| 시장 YTM | 채권 시장가격 | 액면가 대비 | 해석 |
|---|---|---|---|
| 2% | 약 10,898원 | +9.0% | 시장금리 < 쿠폰 → 프리미엄 (액면가 위) |
| 3% | 10,000원 | 0% | 시장금리 = 쿠폰 → 패리티 (액면가) |
| 4% | 약 9,189원 | −8.1% | 시장금리 > 쿠폰 → 디스카운트 (액면가 아래) |
| 5% | 약 8,455원 | −15.4% | 시장금리가 쿠폰보다 2%p 위 → 가격 15% 하락 |
YTM이 3% → 5%로 단 2%p 올랐을 뿐인데 가격은 15% 떨어진다. 이 비례의 크기가 곧 §4의 듀레이션이다. 그리고 같은 1%p 변동이라도 만기가 길수록(예: 30년물) 가격 변동폭은 훨씬 커진다.
3.4 가격–수익률 곡선의 모양
가격과 YTM의 관계를 한 평면에 그리면 볼록한(convex) 하향 곡선이 나온다. 선형이 아니라 곡선이라는 점이 §4.3 컨벡시티의 출발점이다.
4. 듀레이션과 컨벡시티
4.1 듀레이션 — 금리 민감도의 선형 근사
- \(D\) : 듀레이션 (단위는 "년"으로 표현되지만 실제 의미는 금리 민감도)
- \(\Delta y\) : 시장금리 변화 (예: +0.01 = +1%p)
- \(\Delta P / P\) : 채권가격의 비례 변동
- 음(−) 부호: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임
예: 듀레이션이 8인 채권은 금리가 1%p 오르면 가격이 약 8% 떨어진다. 듀레이션이 25인 30년 제로쿠폰 채권은 금리가 1%p 올라도 약 25%의 가격 하락 — 같은 금리 변동도 만기에 따라 충격이 전혀 다르다.
4.2 어떤 채권이 듀레이션이 큰가
듀레이션은 만기뿐 아니라 표면금리와 시장금리에도 영향을 받는다. 일반적 경향을 정리하면:
| 요인 | 듀레이션을 키우는 방향 | 이유 |
|---|---|---|
| 만기 ↑ | 증가 | 현금흐름이 더 먼 미래에 쏠림 — 할인의 효과가 커짐 |
| 표면금리 ↓ | 증가 | 중간 쿠폰이 작아서 원금 상환(만기 한 점)에 무게가 집중 |
| 시장 YTM ↓ | 증가 | 저금리 환경에서 같은 미래 현금흐름의 현재가치 비중이 커짐 |
| 쿠폰 주기 ↑ | 증가 | 분기→연 단위로 늘리면 중간 회수가 줄어 만기에 쏠림 |
- 2년 국채: 약 1.9
- 10년 국채 (쿠폰 3%): 약 8~9
- 30년 국채 (쿠폰 3%): 약 19~21
- 30년 제로쿠폰 채권: 30 (정확히 만기와 같음)
제로쿠폰 채권은 듀레이션이 가장 큰 형태 — 중간 쿠폰이 없어 모든 현금흐름이 만기 한 점에 모인다. 그래서 금리 민감도가 극단적이다.
4.3 컨벡시티 — 곡률 보정
듀레이션은 어디까지나 현재 위치에서의 접선이다. 금리 변동이 크면 곡선에서 점점 멀어지는 — 즉 듀레이션만으로는 가격 변동을 잘 못 잡는다. 이 곡률(2계 미분)을 잡는 게 컨벡시티(Convexity)다.
식의 마지막 항이 컨벡시티 보정. 항상 양(+)이므로 컨벡시티가 큰 채권은 비대칭적으로 좋은 자산이다 — 금리가 내리면 듀레이션이 약속한 것보다 더 오르고, 금리가 오르면 듀레이션이 약속한 것보다 덜 떨어진다.
§3.4의 가격–YTM 곡선이 볼록(아래로 처진 곡선)이므로, 같은 1%p 금리 변동이라도:
- 금리 1%p 하락 → 가격 상승폭이 듀레이션 예측보다 더 크다
- 금리 1%p 상승 → 가격 하락폭이 듀레이션 예측보다 더 작다
즉 채권 보유자는 같은 절대값의 금리 충격에서 항상 약간 유리한 쪽으로 비대칭이 작용한다 — 이것이 "컨벡시티 프리미엄"이다. 장기 채권일수록 컨벡시티도 크다.
4.4 사례 — 듀레이션이 은행을 무너뜨릴 때 (SVB 2023)
2023년 3월, 미국 16위 은행 SVB가 며칠 만에 파산했다. 직접적 원인은 자산 포트폴리오의 듀레이션 미스매치 — 채권 페이지의 모든 개념이 한 사건에 응축돼 있다.
① 자산 구성: SVB는 2020~2021년 저금리 시기에 예금이 폭증하자 그 자금을 10년 이상 장기 국채·MBS에 대거 투자했다. 만기까지 보유(HTM) 분류로 분류하면 일일 시가평가가 의무가 아니므로 장부에는 액면가로 남아있었다.
② 듀레이션 폭탄: 평균 듀레이션이 약 6~7년. 2022~2023년 Fed가 기준금리를 0% → 5%로 인상하자, 듀레이션 공식에 따라 그 채권 자산의 시장가치는 약 30~35% 하락. 액면가 1,000억 달러어치가 시가 700억 달러어치로 떨어진 셈.
③ 트리거: 예금자가 환매 요청 → 일부 자산을 시장에 매각 → 손실 실현 → 자본 부족 노출 → 더 많은 예금 이탈(뱅크런) → 파산.
핵심 교훈: 듀레이션은 평소엔 "이론적 민감도"지만, 충분히 큰 금리 변동이 일어나면 회계 분류와 무관하게 실제 자본을 갉아먹는다. 시가평가를 피한 HTM 분류는 회계적 트릭이었을 뿐, 경제적 손실은 그대로 누적되고 있었다.
이 사건 이후 미 Fed는 BTFP(Bank Term Funding Program)를 즉시 도입 — 은행이 보유한 국채·MBS를 액면가 기준으로 담보로 잡고 1년간 자금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다. 듀레이션 손실로 시가가 떨어진 자산을 시가가 아닌 액면가로 인정해주는 — 사실상 듀레이션 위험을 Fed가 흡수해준 비상조치다.
5. 만기 구조와 수익률 곡선
5.1 곡선의 세 가지 형태
같은 발행자(예: 미 재무부)의 채권이라도 만기에 따라 수익률은 다르다. 만기를 가로축, 수익률을 세로축에 그리면 수익률 곡선(Yield Curve)이다. 곡선의 모양이 시장 기대를 압축해 담는다.
5.2 곡선을 설명하는 세 이론
왜 장기 수익률이 단기 수익률보다 높은(또는 낮은)지 — 이를 설명하는 세 가지 표준 이론이 있다.
| 이론 | 주장 | 예측되는 정상 형태 |
|---|---|---|
| ① 기대 가설 (Expectations) |
장기 금리 = 향후 단기 금리들의 기하평균. 시장이 미래 단기 금리를 예측해 장기에 반영 | 금리 상승 기대 → 우상향, 하락 기대 → 우하향 |
| ② 유동성 프리미엄 (Liquidity Premium) |
장기 채권은 가격 변동이 크고 자금이 묶임 → 더 높은 수익을 요구한다 | 항상 우상향 (기본 베이스 +α) |
| ③ 시장 분할 (Market Segmentation) |
단기·중기·장기 시장은 매수자 풀이 다름. 각 시장의 수급이 독립적으로 가격을 결정 | 각 만기별 수급 결과에 따름 |
현실의 곡선은 세 메커니즘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로 본다. 평상시 우상향은 ②, 침체 직전의 역전은 ①(시장이 미래 금리 인하를 예측)이 주도. ③은 특정 구간만 갑자기 휘는 경우(예: 연기금이 30년물만 대량 매수해서 30년물만 낮은 수익률)를 설명한다.
5.3 역전(inversion) — 침체의 전조
역전이 일어나려면 두 조건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 단기 ↑: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중. 단기물 수익률은 정책금리를 그대로 따라감
- 장기 ↓: 시장이 "고금리가 곧 경기를 죽일 것"이라고 예측 → 향후 금리 인하 기대 → 장기물 수익률 하락
역전 = 시장이 "Fed의 현재 정책은 너무 강하다, 곧 침체가 와서 인하로 돌아설 것"이라고 베팅하는 상태. 그 베팅의 정확도가 통계적으로 매우 높았다 — 그래서 역전 자체가 자기실현적 신호가 된다.
2022~2024년 미국에서 10Y−2Y 스프레드는 2년 넘게 역전 상태였다. 역전이 풀리는(다시 정상화되는) 시점이 보통 침체의 직전이다. 이를 "곡선의 정상화(steepening)"라 부르며, 단기 금리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일어난다 — 즉 침체가 시작돼 Fed가 인하를 시작했다는 신호.
6. 신용 스프레드
6.1 무위험 + 위험 프리미엄
예: 10년 미 국채가 4.0%이고 같은 만기 AAA 회사채가 4.5%이면 신용 스프레드는 50bp(=0.5%p). 100bp = 1%p. 이 스프레드는 "이 회사채를 사는 사람이 1년에 0.5%p의 추가 수익을 받는 대신, 부도 위험을 떠안는다"는 가격이다.
6.2 신용등급별 스프레드
신용등급은 채권의 부도 위험을 알파벳·숫자로 표현한 등급. 무디스·S&P·피치 3대 기관이 표준이며, 한국은 한국신용평가·NICE·KIS가 국내 등급을 매긴다.
| 등급 (S&P) | 의미 | 대표 발행자 | 10년 스프레드 (평상시) |
|---|---|---|---|
| AAA | 최우량 — 사실상 부도 없음 | 마이크로소프트·존슨앤존슨 | ~30~50bp |
| AA | 매우 우량 | 애플·삼성전자 | ~50~80bp |
| A | 우량 | 대다수 대기업 | ~80~120bp |
| BBB | 투자등급의 마지노선 | 경기에 민감한 기업 | ~120~200bp |
| BB 이하 (정크) | 투기등급 — 부도 위험 유의미 | 레버리지 높은 기업 | 300~800bp 이상 |
BBB와 BB 사이의 갭이 가장 큰 분기점이다 — 많은 기관투자자(연기금·보험)는 "투자등급(IG) 이상만 보유" 정관에 묶여 있어, BBB에서 BB로 떨어지는 순간 강제 매각이 일어난다. 그래서 "fallen angel"(BBB→BB로 추락) 이슈가 시장 충격으로 이어진다.
6.3 스프레드의 사이클성
신용 스프레드는 경기 사이클에 강하게 연동된다.
- 호황기: 부도가 드물고 자금이 풍부 → 스프레드 축소 (회사채가 국채와 거의 같은 수익률)
- 침체기: 부도 우려 ↑ + 안전자산 선호 ↑ → 스프레드 급격히 확대
- 금융위기: 정크본드 스프레드가 평상시 5%에서 20%까지 튀어오름 (2008·2020)
팬데믹 직후 며칠 만에 미 정크본드 스프레드가 3.5% → 11%로 폭등. 시장에서 회사채 매수자가 사라지면서 — 유동성 위기와 신용 위기가 결합된 상태.
Fed는 즉시 SMCCF(Secondary Market Corporate Credit Facility)를 가동, 사상 처음으로 회사채(및 회사채 ETF)를 직접 매입했다. 이 발표만으로 스프레드가 다시 5%대로 안정 — Fed가 "산다고만 말해도" 시장이 안정되는 현상.
7. 발행량 → 가격 → 수익률의 연쇄
7.1 공급 증가가 시장에 가하는 압력
지금까지의 모든 논의는 "이미 발행된 채권"의 가격–수익률 동학이었다. 한 단계 더 올라가서, 신규 발행량이 변하면 시장 전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채권 분석의 마지막 층이다.
7.2 구축효과 — 다른 자산으로의 전이
- ① 가격 경로: 국채 수익률이 오르면 회사채·주담대 금리가 함께 오름 → 기업·가계 차입 비용 증가 → 투자·소비 위축
- ② 수량 경로: 기관투자자의 포트폴리오 한도가 일정하면, 국채 매입 증가만큼 회사채·주식 매수 여력 감소
2024~2025년 미 재무부의 발행 급증으로 10년물 수익률이 5%까지 오른 사례가 이 메커니즘의 직접 발현. 동시에 주택담보대출 금리도 8%까지 — 1980년대 이후 최고 수준으로 — 함께 올라갔다.
7.3 중앙은행의 매입이 끊는 연쇄
이 연쇄의 끝에서 중앙은행이 등장한다. QE는 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중앙은행이 (유통시장에서) 매입함으로써, 위의 ①~③ 단계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정책이다.
+ 중앙은행 매입 ↑ → 수요 보충 → 가격 ↓ 상쇄 → 수익률 ↑ 상쇄
결과적으로 정부는 대량 발행에도 불구하고 낮은 조달비용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대가로 본원통화가 발행량만큼 늘어난다 — 정부 적자가 사실상 화폐 발행으로 자금화되는 경계선이다 (정부 §6.2에서 다룬 부채 화폐화의 메커니즘).
- 정부가 채권을 발행 → 시장의 자금을 흡수 → 정부 지출로 다시 시장에 풀림 (시간을 이동)
-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입 → 본원통화를 발행 (자산 매입 = 화폐 발행)
- 상업은행이 채권을 보유 → BIS 자본 절약 + LCR 충족 + 레포 담보로 활용
- 채권 가격이 곧 시장의 금리이고, 그 금리가 신용창조와 자산가격 전체의 출발점
즉 채권은 단순한 투자 자산이 아니라 모든 행위자가 모이는 결제·정책·신용 시스템의 매듭이다.
8. 정리
핵심 명제 일곱 가지
- 채권은 시간을 거래하는 표준화된 증서다. 액면가·표면금리·만기·발행자 네 요소가 미래의 현금흐름을 정의한다.
- 가격과 수익률(YTM)은 같은 정보의 두 표현이다. 한쪽이 정해지면 다른 쪽이 자동으로 따라온다.
- 가격–수익률 관계는 단조 감소이며 볼록하다. 이 곡선의 기울기가 듀레이션, 곡률이 컨벡시티.
- 듀레이션은 만기가 길수록·쿠폰이 작을수록·시장금리가 낮을수록 커진다. 같은 금리 변동도 듀레이션에 비례해 가격 충격이 확대된다 (SVB 2023).
- 수익률 곡선의 모양에 시장의 미래 금리 예측이 압축돼 있다. 역전은 통계적으로 침체 신호.
- 신용 스프레드는 부도 위험에 대한 시장 가격이다. 경기 사이클에 강하게 연동되며, 위기 직전 급격히 확대.
- 발행량은 가격·수익률·다른 자산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앙은행의 매입(QE)이 이 연쇄를 끊을 수 있지만, 그 대가는 본원통화 확대.
이어지는 페이지
- 채권의 발행 메커니즘과 정부 부채 동학 → 정부 · 국채 발행 메커니즘
- 중앙은행이 채권을 매매하는 방식 → 정책수단 · 공개시장조작
- 본원통화 발행과 채권 매입의 관계 → 중앙은행 · 대차대조표
- 금리 변화가 실물에 닿는 전달 경로 → 통화정책 전파
- 채권 시장 전체가 통화시스템에서 갖는 위치 → 가치 동역학